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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아~~~~ 인 날

솔초 2019. 6. 16. 22:43

20190616

사춘기의 아이에게는 다른 세대의 인간은 갖기 힘든 비상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시기 이전에는 없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사라져 버릴 사춘기만의 것. 
부모에게 상처가 될 적절한 이야기나 단어들을 잘 찾아내서 10대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실어 매우 열 받을만한 타이밍에 내던지는데, 흥분하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웃음기 띤 얼굴을 유지한 채 최소 빈정 상함, 최고 폭발 직전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언제부턴가 갱년기의 아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의 빈정 유발 인자를 나도 갖게 되었다. ㅜㅜ

"고혈압으로 병원에 입원이나 해버려!"
라고 아이가 내게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담아 쏘아붙이면,
"체질상 고혈압은 어렵겠는데? 입원 할 병명까지 정해주고 아주 고맙다. 그럼 어디 엄마 없이  고생 좀 해 보시든가."
이렇게 내가 받아치는 식이다. 사실 욕만 안 할 뿐이지 일기에 쓰기 창피한 더 아픈 말들이 오간다. 여기 쓰지 못할 뿐.

어쩌다보니 사춘기의 아이와 갱년기의 나는 소리없이 강하고, 세고, 아픈 말들을 상대에게 투척하는 신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경쟁이라도 하듯 매 순간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나쁜 말을 듣고 자란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병든다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이 요 모양이다.
 
이청용 선수 사진이 붙어있는 아이의 방문을 요즘 들어 나는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드나드는 게 조금 쉬워졌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힘들 수 있어. 살아서 나오는 게 다행이지. 왜냐면 거긴 지옥이거든. 그러니 힘들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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