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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 일흔하나.m4a

  '못 잊어'의 시간이 지나가면 '먼 후일'처럼 되지 않을까?


2019. 4. 22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을 날 있으오리니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임자 당신 나 싫다고 울 치고 담치고 배추김치 소금 치고 열무김치 초를 치고

칼로 물밴 듯이 그냥 싹 돌아서더니 이천 팔십 리 다 못 가서 왜 또 나를 찾아 왔나.



김소월 시인이 '창부타령'의 가사를 가져다가 '못 잊어'를 지었다는 얘기는 김소월의 시를 배울 때에나 혹은 그  뒤에라도 들은 적이 없으니 그 반대의 경우가 맞을 것 같다.

 

 

선생님도 '못 잊어'가 발표된 이후 누군가가 시를 가져다 노래에 붙였을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가사를 지은 사람은 시가 세상에 나온 1920년대부터 최근 100년 사이에 살다 간 사람으로, 창부타령과 김소월의 시를 둘 다 알고 있는 사람이며, 가사를 직접 붙일 정도로 평소에 창부타령을 즐겨 부르던 사람인가 보다.

민요 가사에서 시를 발견한 것도 신기한데, 생소한 표현들이 있어서 더 궁금해졌다. 가사를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

 

'인자 당신 나 싫다고'는 두 가지로 해석을 해 보았다.

인자는 '지금'이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지금, now. '시방'이라는 다른 사투리도 있다.)로, ①'내동 잘 지내 놓고, 이제 와서 뭔 소리다요?' 정도가 되겠다.

혹은 ②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같은 의미인 임자와 당신을 연달아 썼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떻게 나를 떠날 수 있어?' 정도가 되겠다.

 

울 치고 담치고 배추김치 소금 치고 열무김치 초를 치고

'울 치고 담치고'에서 임자의 거리두기가 느껴졌다면, '소금 치고 초치고'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물론 노래를 배우면서 웃지는 못했지만 부르면서, 속으로 이 상황에 이런 가사는 너무 웃기지 않나, 생각했다. 열무김치에 초를 친다고? 왜? ㅋㅋ

라임에 대한 욕심이 있었거나 '울 치고 담치고'에서 느껴진 거리감과 막막한 심정을 끊지 않고 이어가고 싶었던 지은이의 절절한 마음이었을까? 
조금만 더 찾아보면. 닥치다, 벼락치다, 한 대 치다(때리다), 그런 셈 치다, 가축을 치다(키우다)도 있는데, 배추김치, 열무김치를 떠올렸다면, 음식을 다루는 일이 일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을 먹기만 한 사람이라면 배추김치에 소금을 치는 과정을 가사로 떠올리기는 힘들 것이다. 성인 여성일 수도 있겠다.


칼로 물밴 듯이 그냥 확 돌아서더니

지금까지 '칼로 물을 밴다'는 표현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 정도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여서, 처음 이 가사를 보았을 때엔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칼날이 물을 가를 때의 거침없음과 속도감이 임자가 떠나가는 순간과 비슷해서였을 거라는 것이 거듭 불러 본 뒤에 하게 된 생각이다.

물이 아니라 비슷한 발음의 '무'도 상상해 보았지만, 무를 단숨에 자르려면 힘이 장사이거나 칼날이 매우 예리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할 것 같아서 물보다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2080리 다 못 가고

2080리를 km로 환산해보니 825km가 나왔다. 검색을 해 보니 한반도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가 1178km. 

단순히 어감이 좋아서 2080리를 붙였을 수도 있지만, 실제 작사가가 지내던 곳과 임자가 떠나려 했던 곳의 거리가 2080리라면?

그렇다면 '임자 당신'의 '임자'는 '임자(당신)'라기보다 '인자(지금)'였는데 불리면서 발음이 바뀌었을 수 있고, '인자'라는 말을 쓰는 걸로 보아 전라도에 살고 있거나 전라도에 살았던 사람이다. 평안도나 함경도는 작사가가 살던 전라도 어느 도시로부터 가장 먼 곳이자 우리나라 최북단으로, '다시 만날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가버리겠소', 하고 선언하고 떠나기 적합한 곳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작사가는 변심한 임자가 떠나버린 후 혼자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임자를 생각했을 것 같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다가, 시어빠진 열무김치를 먹다가도 불현듯 서운함이 솟구쳐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다 예고 없이 다시 나타난 임자를 보면서 혼자 기다리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이런 가사를 쓰지 않았을까?

단 세 줄의 가사에 헤어짐의 과정과 전후의 심경, 홀로 견딤의 시간, 그리고 재회까지가 다 들어있다. 재치 있게도 다시 돌아온 임자를 지은이가 따뜻하게 받아주었는지 뻥 차 버렸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구년지수, 장장추야, 만단정회 등 다른 창부타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자말이 없다. 한자말들을 잘 몰라서 쓰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많이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가사를 지은 사람이 우리말을 능숙하게 다루거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누군가라는 사실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짓고 부를 만큼 대중적인 노래였다는 반증 같은...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창부타령 '못 잊어 생각이 ~'의 작사가에 대한 나만의 프로필이 완성되었다.

전라도 출신 여성으로 시와 노래, 문학에 관심이 많다. 실연의 아픔을 혼자 삭이는 것이 아니라, 시의 일부를 샘플링해서 가사를 지을 정도로 대범한 면이 있다. 가사를 짓기 전, 김소월의 '못 잊어'로 이미 위안을 받아 자신만의 가사로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 싫다 울 치담치 배추김치 소금 치 열무김치 초를 치고 '에서, '고'를 라임으로 보면 무려 5개, 치고를 라임으로 보더라도 4개의 라임을 살려낸 우리말 실력자이다.

'싹 돌아서더니 왜 찾아왔냐'라고 따지는 솔직함도 있다. 울타리, 담, 배추, 열무 등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 있는 평범한 소래들을 노랫말로 녹여낼 만큼 창의력이 풍부하다. 

 

평범한 동네 아낙이 이 정도의 노랫말을 지어 부를 만큼 감수성과 창의력이 풍부하다는 것이 우리 민족이 가진 저력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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