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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 예순다섯.m4a

'일일시호일'  252p에 실린 사진

 

 

2019. 2.14

다도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노래가 떠올랐다. 일본의 다도와 서도민요라니,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가 서로 통하기도 하는 것일까?

 

다도에 대한 책을 보게 된 건 찻집 공부차에서 만난 팽주(:차를 우리고 차를 마시는 자리의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의 말 때문이다.

공부차는 오래전에 알고 지낸 선배와 처음 가 본 곳인데카톡의 친구 목록을 살피다가 있는 줄도 몰랐던 선배의 전화번호를 우연히 발견하는 바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주소록의 친구 목록을 살피는 사소한 행동에서 비롯된 셈이다.

지금까지 내게 차란, 커피나 다른 음료의 과잉섭취를 막기 위해 마시는 음료 정도였는데, 차를 우릴 때 나는 여러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차를 마시는 일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처음 공부차에 방문했을 때 팽주가 말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영화로도 나왔더라고요.”

 

꼭 내게 한 말은 아니었고 가볍게 흘러가는 말 중 하나였을 것인데, 오고 간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내 것인 것처럼 기억에 남았다.

 

설 연휴가 지나고 지인과 다시 이곳을 방문했을 때, 팽주는 영화로 본 일일시호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자신이 처음 차를 배울 때의 경험과 겹쳤고, 자신의 차 스승에게 들은 얘기를 영화 대사로 다시 들었을 땐 무척 반가웠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아직 책을 보기 전이었지만 영화 얘기를 들으니 책을 먼저 읽고 싶어 졌다.

팽주에게 들은 책의 이야기들 중 서도민요 선생님이 내게 하셨던 얘기와 같은 맥락의 얘기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차가 갖고 있는 소리들을 영화로 보기 전에 상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눈으로 노래하세요.”

말씀과 동시에 눈빛으로, 표정으로 나를 재현하셨다. 마치 내 앞에 또 다른 내가 앉아있는 듯했다

 

초점 없이 멍한,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영혼 없어 보이는, 딴생각하고 있는 듯한, 기운 없는, ‘그래서 뭐 날더러 어쩌라고요하는 표정이다.

~ 내가 저렇게 맹하고 멍한 표정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나름 에너지를 담아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 에너지를 담지 않았던 것일까? 나라면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의 노래를 굳이 끝까지 들어볼 것 같지 않은데저 모습이 나?

-나의 쉰네 번째 노래일기 중에서 -

 

노리코, 너 지금 어디 다른 곳에 가 있는 거지?”

?”

나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젊다는 건 못쓰겠네. 왜 그리 침착하지 못한 지.”

선생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대로 여기 있으렴.”

“.....?”

일단 가마 앞에 앉으면, 제대로 가마 앞에 있는 거야.”

-모리시타 노리코의 일일시호일’ 164~165p 중에서-

 

나와 책 속 노리코의 상황은 다르지만, 적어도 딴 생각으로 가득한 채 몸만 여기에 있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하라는 의미인 것만은 알 수 있다.

? 이것도 나랑 비슷해.’라고 느낀 것들을 여기에 다 쓸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보면,

 

다도라는 거 말야. 뭐가 재미있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는 거야?” 친구들이 그렇게 물어볼 때가 있다.

- 같은 책의 서문 중에서 -

 

시작한 지 2년도 안 되었는데 이 책을 쓴 모리시타 노리코와(40년 넘게 다도를 하고 있는데, 이 책에는 25년간의 배움이 담겨있다)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창 한 번 해봐.’

내가 창이라 애기한 적은 없지만,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묻는 친구들도 있다.

 

너 참 대단해!’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인지, ‘배워서, 그다음에 어떻게 할 건데?’, 하는 염려를 담은 놀라움인지, 일반인들이 쉽게 떠올리기 힘든 생소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인지는 몰라도 이런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나 스스로도 내가 좀 대단한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 외에도,

왜 배워?, 재밌어?, 아직도 배워?’ 등도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도 쉽지가 않다. 하고 싶어서 시작은 했지만 안 되면 하기 싫어지고, 조금 느는 것 같으면 의욕이 생기다가도, 바쁠 땐 연습도 못한 채 수업을 하기도 하고, 지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도 배워?’ 라는 질문은 가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목적도 없이, 성과를 내지도 못하면서, 정해진 길도, 예측 가능한 목표도 없이 계속하는 건 도대체 뭐야, 좀 무모하고 한가로워 보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노래를 배우는 것이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비생산적인 것이 꼭 별로인 것만은 아니며, 생산적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직업이나 돈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서 하게 되었다.

 

25년 동안 차를 배운 사람의 시작은 특별하거나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소하다 못해 시시해 보였다.

다도에 대해 호감이라곤 전혀 없던 스무 살의 저자는 사촌인 미치코가 같이 배워보자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다도를 마치고 미치코와 같이 수다를 떨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역시,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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