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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 예순셋.m4a

 

2019. 1. 24

 

이전의 노래 일기에서도 쓴 적 있지만 서도민요를 배우기 전에 경기민요를 배운 적이 있다.

 

어디에서 누구한테 배울까 여기저기 알아보고 결정했다기보다는 문화센터 안에서 장구 치는 소리가 들리길래 궁금한 마음에 민요교실 문을 열었다가 시작하게 되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70대 전후의 분들로 80대 초반 분도 한 분 계셨고, 대체로 몇 년씩 계속 배우고 있는 분들이었다.

민요를 배워서 돈벌이를 하겠다거나 대회에 나가 상을 한번 타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좋아서, 혹은 같이 배우는 사람들을 이 수업을 계기로 계속 만나는 것에 더 의미를 두시는 것 같았다. 수업 사이사이 아침방송 시청후기나 관절수술 정보도 공유하고, 나는 모르고 그 분들만 아는 제3의 인물에 대한 얘기와 아들 며느리 이야기, 차도 마시고 챙겨온 간식도 나눠 먹고, 가끔은 점심까지 드시는 것을 하나의 민요 수업으로 생각하시는 듯 했다.

 

두세 번쯤 수업을 받았을 때, 민요 선생님과 막내 어르신 회원이 어르신들의 차 서비스를 맡으라고 말씀하셨다. 굳이 수업 중에 단체로 차를 마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어 보였고 다들 내가 하는 것에 이미 동의하신 분위기였다.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의 장구 세팅을 하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10명 분량의 물을 다시 끓이고, 각자가 원하는 차의 주문을 받은 뒤 종이컵에 녹차 혹은 커피를 담아 어르신들의 자리까지 서빙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뒷정리까지 한 뒤 사물함의 열쇠를 채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반의 노래수업이 끝나고 나면 장구 수업이 이어졌는데, 수강생들의 장구 받침대와 장구를 세팅하는 일이 또 나와 막내 어르신에게 주어졌다. 남자 어르신이 있던 몇 달 동안은 그 분까지 셋이서 장구를 세팅했고, 그분이 그만두고 둘이서만 하자니 나도 어깨가 아프고 힘들었다. 몇 달 뒤에 새로 오신 분이 분위기를 파악하시고 많이 도와주셨지만, 돕는 시늉만 하거나 아예 세팅이 끝난 후 등장하시는 분도 여럿 계셨다.

 

한 번은 장구를 세팅하는 동안 사라졌다가 수업 중간에 나타난 분이 자기 장구가 놓이지 않은 것을 알고 가만히 서 계신 적이 있었다. 장구를 치느라 나는 그분의 등장을 모르고 있었는데어르신 한 분이 그 분이 쓸 장구를 가지러 가면서 내가 꼭 일어나야 하겠어?’ 하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시는 것이었다. 매너 없이 수업 중간에 나타나서 자기 몫의 장구를 요구하는 어르신은 장구가 자기 앞에 놓일 때까지도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셨는데, 나는 왜 그 분이 아이처럼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의 수업을 방해하면서까지 누군가가 세팅해 주기를 기다렸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수업이 끝난 후 장구 정리는 각자 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아주 힘든 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도 아니니 봉사한다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각자 챙기면 불필요한 과정을 줄일 수 있고, 아까운 종이컵을 안 써도 되고, 장구세팅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까지 시키신 일이기도 해서 하고는 있었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막내 어르신께 조심스럽게 얘기해 보았다.

종이컵이 너무 아까운데 개인 물병 지참하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의 장구세팅이나 선생님 차는 제가 할 수 있는데 나머지 분들은 각자 자기 몫의 수업준비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잠깐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글쎄, 그게 먹힐까?”

 

결국 이 막내 어르신은 다른 분들을 설득하기보다는 나를 돕는 쪽을 선택하셨다. 말해서 분란을 일으키느니 차라리 내 일을 덜어주자 생각하신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경로당 가면 밥해야 하니까 안 간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들 나를 예뻐해주셨고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속마음과 다른 행동으로 받는 예쁨이 편치만은 않았다. 다들 나를 며느리 쯤으로 생각하시는 걸까? 나는 집밖에서까지 며느리 노릇하긴 싫은데 ...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고 다같은 수강생일 뿐이라는 생각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1년 반쯤 배웠을 때좀 더 배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선택한 곳이 한국****원의 경기민요반이었다.

문화센터 수업과 병행하다가 둘 중 맘에 드는 한 곳을 정하기로 했다. 대학처럼 방학도 있고, 학기 단위로 등록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문화센터 몇 달치 수강료를 합쳐야 한 달 수강료가 되었다.

장구가 개인준비물이어서 미리 사둔 장구를 첫날 가지고 갔다. 지하창고에 보관을 해 둔 뒤 수업 때마다 1층에 있는 학과사무실에 가서 열쇠를 받아 4층인가 5층에 있던 강의실까지 장구를 가지고 갔고, 수업이 끝나면 반대의 과정을 반복했다.

 

내가 수강했던 두 달 남짓 동안 두 번인가 세 번의 휴강이 있었다. 한 번은 보강이 있었지만, 다른 한 번은 보강을 안 해도 되는 사유(심사, 면접 그런 종류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함)인지 따로 보강을 하지 않았다. 기록해 둔 것이 없어져서 나머지 한 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 1회 수업인데다 학구열이 뜨거웠던 때라 휴강은 늘 아쉬웠다.

 

한 번은 강의실에 들어가니 촬영장비가 있었다. 이게 뭐지? 그런 얘기 없었는데? 단톡 방이나 총무를 통해서도 들은 적 없고, 지난 수업 때 양해를 구했거나 혹은 공지도 없던 일이었다.

선생님  뒤쪽에 삼각대를 두고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수강생 얼굴은 안 나오게 찍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는 내게 누군가 민요를 하는 선생님의 지인 분이라고 얘기를 하며 얼른 나를 끌어 앉혔다.

사전 동의도 없이 왜 촬영을 하느냐고 따졌어야 하는데 이미 촬영이 시작되었고, 소심하게도 촬영이 끝날 때까지 수업을 듣지 않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분들은 촬영에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묵묵히 앉아 수업을 했다. 내가 나가자마자 총무가 나를 데리러 나왔다. 선생님 화나신다며 빨리 들어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왜 내가 아닌 선생님이 화가 나는 건지?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을 해주었지만 이런 일은 또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의실에 돌아가고도 10분 정도가 더 지났을 때 촬영은 끝이 났다.

 

문화센터 경기민요 반의 나처럼 여기도 총무 역할을 맡은 분이 수업 준비 전반을 맡고 있었다. 휴식시간 되기 전에 슬며시 먼저 나가 음료수와 포도(화장실에 가서 씻어옴. 장구를 쳐야 하기 때문에 포도를 먹은 사람들은 전부 손을 씻으러 가거나 어디서 물티슈를 구해 손을 닦아야 함. 한마디로 번거로움), 바나나 같은 과일을 준비해서 선생님과 수강생들의 간식으로 내놓았다. (여기서도 내가 나이가 가장 어린다는 이유로 총무를 넘겨받을 뻔했는데 발표회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총무는 한 달 한 번 만원의 회비가 있다고 했다. 수강생 숫자가 많지 않았기에 나 한 사람의 회비만으로도 한 달 간식값이 충분할 것 같아 금액이 좀 많지 않냐고 했더니, 간식 외에 선생님 꽃다발도 사야하고 여기저기 쓴다고 말해 주었다회비는 냈지만, 2시간 수업에 간식이 꼭 필요한지, 준비하기 간단한 간식으로 할 수는 없는지, 먹느라 필요이상으로 휴식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괜찮은 건지... 

나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이 총무는 노래연습을 열심히 해오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수업 중에 개인별로 시켜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생님한테 지적을 많이 받는 편에 속했고, 내 귀에도 배운 노래의 음정 박자가 맞지 않는 때가 많았다.)

간식 준비를 하느라, 이런 런 일들을 처리하느라 수업 중에도 자리를 비우거나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때는 숨을 헐떡이면서 들어와 겨우 자리에 앉기도 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수업 외의 일에, 꼭 해야 되는 일이 아닌 일에 에너지를 뺏기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이 총무도 나처럼 배우러 온 사람인데... 

 

수업을 4~5번 정도 했을 즈음, 연말 발표회 애기가 나왔다. 실력이 안 될 것 같아서 빠지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가능하면 참석하라고 하셨다. 내용을 들어보니 단순히 나 혼자 노래 연습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23일 산공부라는 것도 가야 하고, 발표회 때 입을 한복도 맞추고, 여럿이 하니까 동작도 맞춰야 하고, 산공부에 따르는 (내게는) 어마어마한 먹을거리의 목록과 분량, 한복값, 산공부에서 하는 수업에 따른 별도의 레슨비 등 노래실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망설이게 될 이유들이 너무 많았다.

선생님은 노래를 하기로 시작했으면 이 정도의 비용은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감당해도 될 만큼 내 노래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한복 짓는 일을 업(嶪)으로 하시는 분이 조용히 손을 손을 들었다.

저, 제 한복은 제가 해도 될까요?”

 

선생님이 아마 이런 내용의 답변을 하셨던 것 같다. 단호한 어조로!

아무리 같은 천에 같은 디자인이라고 해도 느낌이 다르니 여기서(이 한복집에서) 같이 하세요.’

선생님 말씀처럼 디테일한 부분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한복 짓는 일을 하시는 이 분은 당황한 듯 보였다.

발표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나자 수업을 계속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복에 대한 논의, 발표회 연습에 대한 논의, 산공부에 대한 논의들이 수업 중에도 종종 이루어졌다. 한복 천이 펼쳐진 수업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치수를 재기 위해 한복집 주인이 수업시간에 왔던 것도 같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빨리 끝내고 수업해요.’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발표회에 나가지 않는 나는 이런 논의들이 지속될 때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노래만 배우겠다는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이곳에서 더 수업을 받다간 민요가 확 그냥 막 그냥 싫어질 것 같았다.

남은 수강료를 환불받고 이 수업 때문에 마련한 내 몸통보다 큰 장구를 끌고 그 곳을 나왔다. 두달 남짓 출석을 했지만, 보강 없는 휴강이 있었고, 수업을 했으나 수업을 할 수 없던 날이 있었고, 텅 빈 수업이 자주 있었다.

 

이 불편했던 시간들에 대해 한번은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늘어지는 박자를 맞추기 위해 다시 시작된 장구와의 수업~ 이 장구에 좋은 기억을 담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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