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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일기

예순 - 들리는 대로 -

솔초 2019. 1. 9. 22:49

공개수업 예순.m4a

2019. 1. 2

 

우리 선생님의 옛날이야기 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노래수업을 가는 길에 민요책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고 한다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한 권 더 주세요!’ 할 수도 있었을 텐데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혼날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 않았고, 대신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노래를 그 자리에서 외워서 부르셨다고

지금의 나처럼 부르다가 궁금해지는 단어가 생겨도 확인해 볼 책이 없었으니 선생님의 소리와 자신의 귀에 의지하면서 듣고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긴 난봉가의 1절 가사는 정방산성 초목이 무성한데 밤에나 울 닭이 대낮에 운다.이다. 펼쳐놓고 보면 이해하기 힘든 가사는 아닌데, 소리로만 듣다 보면 어떤 단어 길래 소리가 이렇게 날까 싶은 단어가 있다.

울닭을 예로 들면, 책 읽듯이 또박또박 울닭이라고 읽는 게 아니라, ‘우울다하알기이이히이이이로 미세하게 쪼개어서 발음을 한다.

책을 본다고 이 미세한 발음들이 보일 리 없지만 발음이 잘 안 되면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가사를 자꾸 보게 된다.

 

이전의 노래수업에서도 나는 선생님의 소리보다 가사에 의존하려 했던 적이 많았다. 실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어미가 있는 말(살래나, 가누나, 말려무나 등)과 단어(실죽밀죽, 앵도라지다 등)들은 한 번에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한없이 길어지고 잘게 쪼개지는 후렴구들은 소리나는대로 옮겨적고 따라하기 전에는 정확하게 부르기가 어려웠다. 가사의 절반이 낯선 한자어 -초강백성, 호생오사, 적망사창, 전전반측, 한산낙목 등- 인 초한가는 한자를 보면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더 자신있게 소리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듣는 것보다 내 눈으로 보는 쪽을 더 선호했다.

내가 듣고 부르는 소리가 틀렸다면 다시 불러주실 것인데도, 나는 틀리기도 전에 미리 틀릴 것을 염려하고 확인하는 불필요한 과정을 거쳤는지도 모르겠다.

 

긴 난봉가의 후렴인 에 에헤에 에헤이야 어라함마 둥둥 내 사랑아중에서 둥둥두 글자는 두우 우~~~두우우 후우우우으로 소리가 난다. 듣고 따라하는 일이 서툴다 보니 한 글자의 발음이 끝날 때 받침인 을 붙여야 하는데 두우~~~~‘를 하고 있다가 받침을 못 붙이거나 박자도 놓치고, ’둥둥두둥이 되기도 했다.

 

오늘도 긴 난봉가의 후렴을 무한반복 해 주시다가 말씀하신다.

뭘 따라해야 하는지 파악을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음이 다 비슷하게 들려요.”

다 똑같게 들리는 건 둘째 치고 제 노래랑 선생님 노래가 똑같은지는 비교해 보셔야죠.”

어디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은 어떻게, 어떻게 불러라 하고 가이드라인을 드렸는데 이제부터는귀명창?(이 되셔야 합니다.)ㅋㅋ

제 노래를 듣고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면서 어디가 다른지 이제는 스스로 찾아낼 수 있어야 해요. 모든 노래를 초보 수준으로 하나하나 다 가르쳐드릴 수는 없어요.”

 

이어 다시 말씀 하셨다.

다들 글자를 엄청 읽어요. 이 노래를 표현하는 미세한 발음들까지 캐치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들리는 대로 똑같이 따라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잠시 선생님이 전화를 받으시는 동안 나는 아이 방에 갔다가 다시 수업하는 자리로 돌아왔다. , 뭐였더라? ‘로 시작했었나? ‘로 시작했었나? 몇 글자 되지 않은 후렴들이 한 글자 한 글자 토막이 나서 떠다니기 시작한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정확히는 되게 미세한 거예요. ‘인지 인지 정해져 있을 필요도 없구요, ‘사이의 소리일 수도 있어요. ‘라고 발음했는데 '이'로 들렸을 수도 있구요.

 

수업의 절반 정도를 아~~~~~~를 반복하고도 선율의 윤곽이 떠오르지 않았다공개 수업에 편집된 부분은 30분 정도 계속된 아~~~~~~ 중에서 그나마 덜 헤맨 부분을 골라 편집한 것이다.

 

다음 수업을 할 때까지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따라 하면서 내 소리와 어느 부분이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선생님 소리와 비슷해지기 위해 고쳐야 할 것이 음의 높이인지, 길이인지, 발음인지를 들으면서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뭘 따라해야 할 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물론 그 소리가 나오는 과정, 전달 경로를 떠올려봄으로써 선생님 소리를 흉내 내 보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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