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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일기

쉰아홉 - 오래된 습관 -

솔초 2019. 1. 7. 20:28

공개수업 쉰아홉.m4a

고3때 나~

 

 

2018. 12. 19

 

수업이 끝나갈 즈음에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숨 쉬는 것만 좀 연습해 주세요. 노래는 뭐, 틀리고 말고 할 게 없어요.”

 

이 말만 놓고 본다면 다른 부분은 별로 문제될 게 없는데 호흡이 불안정하니 숨 쉬는 것에 신경을 좀 더 쓰시면 좋을 것 같아요.’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겐 이렇게 들린다. ‘숨 쉬는 게 안 되면 노래고 뭐고 다 의미 없어요. 숨 쉬는 것이 먼저 되어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라는 뜻으로

 

1년 전 일기에서도 숨 쉬는 것 때문에 지적받은 이야기를 여러 번 썼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요즘은 노래를 하다가도 내가 또 얕게 들이마셨구나.’ ‘숨이 부족해서 소리를 충분히 내보내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다.

 

노래할 때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내가 숨을 깊이 쉬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고 3때였다.

야간학습이 끝나고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즈음, 같은 반 남학생이랑 우리 집 방향으로 같이 걷게 되었다내가 살던 아파트 안의 보행로였고, 내 오른쪽 옆으로 그 친구가 걷고 있었다나와 걷기 위해 타고 가던 자전거를 옆으로 끌면서...

친구와 나의 발걸음 소리, 규칙적으로 들리는 자전거 바퀴 돌아가는 소리를 빼면, 사방이 조용했다.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풀벌레 소리만 아주 가끔씩 났다. 그때였다, 갑자기 친구가,

 

근데, 너 왜 그렇게 숨을 크게 쉬어?”

 

친구의 말투와 표정과 목소리의 크기를 여기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이랬다.

내 숨소리가 자꾸 들려서 몹시 신경이 쓰인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지듯이 묻고 있었다. 지금 막 궁금해진 게 아니라 참다 참다 견딜 수 없어서 묻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30분도 더 걸리는 거리인데 도대체 언제부터 내 숨소리가 신경이 쓰였던 걸까? 도저히 신경 쓰이고, 궁금하고, 급기야 나를 조용히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어봐야지, 라고 결심이라도 한 듯 보였다.

평지를 걸어도, 오르막을 걸어도, 빨리 걸어도, 늦게 걸어도, 크지도 아예 안 들릴 만큼 작지도 않게 숨을 쉬는 내가 너무도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자전거를 끌고도 여유 있게 걷는 그 친구로선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 내가 진짜 그랬어? ~ 몰랐어. 지금부터 작게 쉴게.”

 

이건 또 무슨내 숨소리가 크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지금 막 알게 되었는데 지금부터 작게 쉴 거라니, 숨소리가 들릴 수도 있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작게 쉴게라고까지 말했을까?

사실 뭔가를 들킨 기분이 들어서 얼굴이 좀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곤 짐작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때부터는 내 귀에도 들리지 않게 더 작게 숨을 쉬려고 했던 것 같다. 이미 친구가 크다고 말했는데도 또 숨소리가 들리면 안 될 것 같았다친구한테,

지금도 들려?’ 라고 물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누가 숨소리를 지적한 적도 처음이었지만, 내 숨소리를 다른 사람이 들었다는 것이 왠지 들으면 안 될 것을 들려준 것 같은 기분이 그때는 들었다. 이미 자연스러운 호흡은 불가능한 상태였고, 어떻게든 살짝 민망해진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더 급했다.

그때부터 친구와 헤어질 때까지 내 숨소리가 들리는지에만 신경을 쓰느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들리면 안 되는 건가? 그렇게 컸나? 오르막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변명을 하자면 할 수도 있었을텐데, 대답도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얘기해 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유 같은 건 알 수도 없었다.

친구가 내 시야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깊은 숨을 내쉬었고, 내 숨소리를 내가 들어 보았다. '아! 내가 숨 쉴 때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 소리^^

 

그 뒤로 숨소리를 제어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조심스러운 자리에 있거나 그 때처럼 가까이에 이성이 있는 경우에 ^^ 다시 크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고, 무엇보다 숨소리로 주목받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숨소리가 유난히 컸다기보다 그때 그 친구의 귀에  내 숨소리만 잘 들렸을 수도 있는데, 그 생각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하게 되었고, 지금은 친한 친구의 남편이 된 그 때의 친구에게 내 숨소리에 대해 굳이 물어볼 생각은 없다.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므로...

 

재작년 겨울 대회연습을 할 때 내 숨소리가 객석까지 크게 들릴까 봐 작게 쉰다고 선생님께 말했을 때,

숨 쉬는 게 죄예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을 보는 거예요. 숨소리 들려도 돼요.” 라고 말씀하셨다.

 

오래 전 친구의 얘기가 없었더라면 혹시 지금 큰 소리로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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