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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3년 중의 첫 날

솔초 2019. 11. 20. 23:44

20191120

 

며칠째 전화를 해도 일기를 통 안 쓰셨다. 며칠 동안 잔소리와 설득을 번갈아 했다. 오늘도 일기를 쓸 수 없는 이유만 늘어놓으셨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럼 쓰지 말라고.

내가 엄마와 통화하는 것을 들은 아이는 자기가 할머니에게 당근을 드리겠다면서 다시 전화를 드렸다. 아이는 엄마를 달래고 다시 설득했고, 20분 뒤에 다시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하셨다.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겠어서 다시 일기를 썼네. 오늘부터는 매일 쓸라고. 작심 3일이 없다. 오늘 일기 쓴 거 읽어 줄게.”

 

오늘 예수병원에 약 타러 가는 날이다. 너무 추운 날이다. 지금은 BB(엄마의 남편 애칭)가 차로 같이 다니지만 언제까지 이 생활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나이를 먹으니까 압박이 닥쳐온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다. 요즘 운동도 못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오늘도 ○○(:나)이한테 잔소리 좀 들었다. ○○이(:내 아이)도 (공부) 선배로서 몇 마디 충고를 하는데 가볍게 넘기면 안 되겠다. 일기는 매일! 매일!! 매일!!! 써야겠다. 작심 3일은 없다.

 

8월 초까지 126일간 일기를 꾸준히 쓰시더니 40일간 쓰지 않으셨다. 안 쓰면서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서 빈 노트에 날짜만 무려 40일을 써 놓으신 걸 지난번에 갔을 때 보았다. 그렇게 비어 가는 노트를 보시니 점점 쓰기 힘들어지고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나들이철, 김장철, 딱 그만 쓰기 좋은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유도 다양했다. 쓰지 않은 40일에는 40가지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교회 모임이 있어서, 마늘을 빻아야 해서, 고추를 닦아야 해서, 김장 당일엔 체해서, 내일이 김장이라, 남은 재료로 또 김치를 담느라, 무리하신 건지 안압이 올라가서...

 

당신이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딸이 끊임없이 당신을 채찍질해줄 거라 꽉 믿고 계시는가? 

일기 한 줄 쓰시게 하는 게 이렇게 힘든데, 중학교 검정고시는 어느 세월에?

 

나의 결심: 앞으로 3년간 다시 엄마의 일기를 전화로 듣기로 했다. 126일은 엄마 것이 되기엔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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