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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일기

2년 만에 나가다

솔초 2019. 8. 18. 11:26

-제18회 전국 서도소리 경연대회 참가기(2019. 8. 15) -

놀랐다. 이번 대회의 신인부 참가자가 33, 지난 17회 때의 대회 일기를 보니 그땐 34명, 경쟁자가 너무 많다. 참가자 수와 상의 개수를 세어보고 최소한 몇 등안에 들어야 수상권이  될 수 있는지를 헤아려본다.^^

대회를 지켜보면서 한 번 더 놀랐다. 내가 참가했거나 참관한 10번의 거의 모든 대회에서 최소 한두 명 이상의 기권자가 있었는데, - 내가 3번일 때 1,2번이 기권을 해서 갑자기 첫 순서로 노래한 적도 있다 - 오늘은 단 한 명의 기권도 없이 33명이 완창을 했다.

서도소리 경연대회이지만 신인부의 경우 서도민요를 부른 사람이 23명, 나머지 10명이 경기, 남도민요를 불렀다.(‘놀량의 경우 경기민요에서도 부르는데, 나는 서도민요에 포함시켰다.)

오전엔 단심인 초중등부, 신인부, 일반부(일반부는 10번까지) 순으로, 점심시간 이후에 일반부(10번 이후 참가자~), 고등부와 명창부의 예선, 고등부와 명창부의 본선, 축하공연, 수상식 순으로 진행됐다.

내 참가번호는 3번이다. 초중등부 참가자가 19명이니까 10~15번 참가자가 부를 때 옷을 갈아입은 뒤 대기실로 가면 될 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면서 건물 밖 현관으로 나가서 연습을 했다. 빗소리 때문에 내 소리가 적당히 가려졌다. 이어폰을 끼고 여든두 번째 수업 때 선생님과 같이 부른 부분을 반복해서 듣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땐 인도를 등진 채(행인과 눈을 마주치고는 싶지 않았다.^^) 소리 내어 부르기도 했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잠시 휴식 중이던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안경은 벗고 올라가라고 말씀해 주신다. 이 분은 지난 5월 대회 때도 심사를 하셨던 분이다. 그땐 쓰고 올라갔었는데, 앞으로는 안경도 스태프에게 맡기고 올라가야겠다. 음성 녹음을 눌러둔 채로 스태프에게 휴대폰과 이어폰, 안경을 맡겨두었다.

내 바로 앞 사람인 2번 참가자의 뒷모습을 보자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2번의 노래 가사에 내가 부를 초한가 가사가 한 줄씩 떨어져 나가 뒤섞이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면 서서히 평온해진다. 부르면서 내 소리를 모니터 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지난 대회 때도 말씀하셨는데, 너무 고음으로 시작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렇게 부르면 듣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고, 일정한 힘을 유지하는 데 방해될 수 있다. 가능한 노래가 편안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내 노래를 살피느라 멈칫하거나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집중해 본다.

내 순서를 마치고 객석에 앉아 4번에서 33번의 노래를 들었다. 휴대폰 메모장에 참가자의 번호, 제목을 적고, 그 옆에 나의 느낌을 적는다.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누구에게 상을 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듣는다. 가능하면 잘하네, 별로네, 하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현재의 내 수준에서 표현 가능한 구체적인 언어로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음정 박자가 정확하다, 뒤로 갈수록 안정감 있다, 듣기에 편하다, 내 생각에 대상, 힘이 좋다 등등.

33명의 참가자 중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 쯤인지 순위도 매겨본다. 내가 생각한 내 위치는 33명 중 10~15등 사이에 있었다.(실제 심사결과 나는 16등을 했다. 내 앞에 동점자도 있고, 등수 간 점수 차가 크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과 심사결과가 비슷해서 나쁘지 않았다.) 다른 참가자의 초한가와 내가 부른 초한가도 비교해 보았다. 신인부는 물론 일반부, 고등부, 명창부까지 내 나름의 심사표를 만들어서 듣고 기록했다. 개인 레슨의 아쉬운 점이 동료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듣게 되면 현재 내 모습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걸 학인하는 순간은 서운하고 맥이 빠진다. 하지만 그 기분이 오래가지 않는다. 지난 노래 일기에 쓴 것처럼 연습한 만큼, 되는 만큼 부르는 것이다. 내가 갈고닦지 않은 초능력이 대회장에서 갑자기 발휘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엑스레이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대회와 또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생각한다. '역시 대회에 나가는 일은 재밌어.' 라고~ 완전 진심. 어쩌면 내가 노래를 부르는 3,4분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이 대회의 많은 것들 중 아주 작은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회의 좋았던 점

1. 참가 인원이 워낙 많아서 비좁게 느껴지긴 했지만, 남녀 별도의 분장실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적어도 로비에서 쭈그리고 앉아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되었다.

2. 신인부의 참가비를 안 받는 대회는 보았는데, 이 대회는 고수비도 받지 않았다. 대회의 문턱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하려는 주최측의 배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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