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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25
-2019 한성백제 전국 예술 무형유산제 참가기(민요부문)-

앞선 네 번의 대회 참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노래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첫 대회 때는 두 달 전부터 연습하고, 적어도 1주일 전에는 한복을 다려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어야 마음이 놓였다.
당일날 먹을 간식도 전날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복을 포함한 대회 소품과 소지품을 빠뜨린 게 없나 두세 번씩 확인하며 미리 짐을 쌌다 풀었다 했다.
노래 아닌 것들에 이러하였으니 노래는 더했다. 효율적으로 연습을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에 대회 곡을 몇 번씩 불러 녹음을 하고, 모니터 하고, 날짜별로 하나씩 남겨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교하는 등 의욕이 넘쳤다.^^

나의 방법들 중엔 그때는 적절했지만 지금은 굳이 필요 없는 것도 있고, 여전히 지금도 필요한 것도 있으며, 없어도 되는 과정들도 있다.
많지 않은 경험들이어도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필요한 것들만 남겨지는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번 대회에는 노래 연습 외에 단 한 가지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있었고, 짐꾸리고 준비하는데 어느 정도 소요될 지도 예상할 수 있으니 미리 할 필요 없다. 화장을 해 줄 사람을 구하거나 미용실을 예약하지도 않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심지어 참가비를와 입금하고 신청서도 냈지만,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늦잠을 자든 몸이 안 좋든 억지로 갈 필요 없으니까 눈 떠지면 하고 싶은대로 하자...


한복 : 작년 여름에 다려만 놓고 입질 않아서 그대로 트렁크에 넣기만 하면 된다.

간식 : 어차피 거의 먹지 않을 것이므로 집에 있는 견과류 한 봉지,  네모난 초콜릿 케이크 두 개, 증정용으로 받아 둔 작은 생수를 챙겼다.

화장:  노래보다 신경 쓰였던 부분인데, 지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건 깨끗이 생략하기로 했다. 이래도 되나 싶게 심플해졌다. 선크림을 평소량의 2배 정로 펴 바르고 쿠션으로 눌러 정리하면 끝. 립스틱은 바르려 했는데 갑자기 찾으려니 안 보여서 립글로스를 대신 발랐다.
이건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립스틱 안 바른 것을 걱정하느라 노래를 망치긴 싫었으므로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대회장에서 빌려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사양했다.

머리: 젤 잔뜩 펴 바르고 그물망 씌우면 끝. 쪽이랑 비녀는 내 순서 30분쯤 전에 꽂아도 충분하다. 너무 빨리 하고 있으면 무거워서 급속도로 피곤해진다.ㅋㅋ

기타 등등: 트렁크 안에 고무신, 속바지, 속치마, 비상용 실핀 등 대회 때만 쓰는 물건들이 다 담아 두었다.

이렇다 보니 어제까지도 나는 평소와 비슷한 하루를 보냈고, 틈나는 대로 초한가를 부르거나 듣거나 흥얼거리는 것으로 연습을 대신했다.

신기하게도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슬렁슬렁하다 보니 이것저것 너무 많이 신경 쓰느라 미리 진이 빠지던 예전의 대회들과 달리, 내 순서를 기다리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 대회 시작 전에는 바깥에 나가서 세 번 정도 큰 소리로 불러 보았고, 실내로 들어와 대기할 땐 선생님과 주고 받은 소리를 듣다가 내 순서가 다가올 즈음엔 첫소절 한 문장만 머리속으로 되내었다. 상상 속에서 선생님의 첫 음 '만~'이 들렸다. '만고영웅'의 음정과 음절들의 길이도 들렸다. 적어도 첫음을 못 잡아 망칠 것 같지는 않았다.

대회를 접수한 5월 18일 이후 연습한 초한가는 한 글짜씩 혹은 한 어절씩, 길어야 한 문장 단위로, 가끔은 내가 숨쉬기 적합한 음절 사이에서 끊어진 채로 내 주변의 공기 속을 떠돌았다. '그래서 얼마나 연습했는데요?' 라고 묻는다면, 고작 1주일이지만 '일상의 빈틈을 초한가로 채워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리를 내도 되는 시공간에서는 소리를 내어, 그렇지 않을 때는 상상으로, 지난 2년간 연습한 것을 양이 아니라 질로 따져본다면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대회가 주는 부담감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고, 비교적 편안하게 연습한 초한가를 부를 수 있었다.

본대회장에서 하는 기악, 무용과 달리, 민요는 작은 세미나실에서 진행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고수, 오른쪽으로 심사위원 셋이 앉아있고 나는 오른쪽을 향해 놓인 방석에 앉아 부른다. 
처음 이런 공간에서 부를 땐 녹음할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엔 미리 녹음 버튼을 눌러 놓은 채 입장하여 뒤쪽 테이블에 올려둔 채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가 고수의 박과 엇갈리는 듯 싶을 때, 심사위원들끼리 눈빛을 교환할 땐 집중력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멈칫하는 나를 진정시켰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1. 대회장에서 부르는 내 초한가의 상태를 녹음으로 남겨서 들어보는 것 2. 대회가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가 되는 것을 느껴보는 것 3.대회날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물흐르듯 익숙해져서 노래 또한 편안해지는 경험하나를 추가하는 것 ' 등등이다.

 

하지만, 1년 반 전 서도민요로 처음 나갔던 대회에서 10명 중 9등을 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다시 그 초한가로 대회를 나간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즈음, 서도민요 선생님이 보내주신 카톡은 다시 나를 평온한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특히 '완벽한 노래는 저도 못합니다'라는 말은 깊은 위안이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대회 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대로 옮겨본다.

"히히!! 좋아요^^ 지난 수업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적할 사람도 없고, 작은 것 하나하나 듣고 판단하지도 않아요!
전체 곡 불러내는 것에 집중해 주시고요.
노래하는 동안에 자기 소리를 모니터 하지 마시고, 다음 소절의 가사와 느낌을 상상하면서 노래해주세용!
입상 여부를 떠나 만족스러운 노래 부르고 오시기를 바랄게요!
완벽한 노래는 저도 못합니다! 자신감 가지시고 아자자!!  빠이팅이에요^^"


       민요 일반부에 참가한 나의 번호포

 

개회식 직전의 본 대회장 풍경

 

*대회 결과 :  감사하게도 민요 일반부 금상을 받았습니다.^^

 

 

*대회에 대해 덧붙이는 말

참가자 대기실이나 남녀 탈의공간이 없어서 로비에서 환복을 해야했습니다. 알아서 개인용 간이텐트를 준비한 사람, 속옷 위에 피부톤의 얇은 (분장용 의상같아 보임)옷을 겹쳐 입은 사람, 차에 가서 갈아입는 사람 여러가지였지만, 대부분은 대회장 로비의 나름 구석진 공간들을 찾아내 갈아입었어요. 앞서 가 본 다른 대회들 중 반은 있고, 반은 없었습니다.

이럴 줄 알고ㅋㅋ 저 역시 헐렁헐렁한 상의에 역시 헐렁한 스커트를 입고 가서, 나름 한복과 평상복을 교묘하게 교차시켜 가며 겨우 갈아입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대회장엔 학생 출연자의 남자보호자와 남자출연자들도 있는데 이 분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침 추첨할 때 뵌 분이 데스크를 지키고 계시길래 여쭈었더니 아래와 같이 답변해 주셨습니다.

'여기가 박물관이다 보니 제한된 공간이 많아서 우리 맘대로 쓸 수가 없다. 서울시 공간이라 서울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 미리 의뢰를 하면 쓸 수 있다. 내년엔 그렇게 하겠다.'

 

꼭 그렇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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