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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산이 스며드는 날

솔초 2019. 7. 7. 23:32

20190707

글로 된 풍경화를 읽는 듯하다. 단지 풍경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살았거나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느낌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그 시공간 안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글로 쓴 그림처럼 다가온다. 읽고 있지만 보는 느낌이고, 글로 된 그림을 보다가 다시 글을 읽는 느낌이다

 

긴 호흡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물들의 동선 어디쯤에 내가 서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문장은 과거의 사실을 이야기할 때도 현재 시재를 쓰고 있다. 작가는 오래된 이야기 속 혹은 등장인물들을 독자인 내 앞으로 불러내어 그들의 억울함, 기구한 사연들을 들려주면서, 과거의 그들을 치유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을 쓰다보니 대학 때 본 적 있는 씻김굿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영웅이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산적, 무당, 도굴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을 겪게 된 여자들의 이야기다. 과거의 일이지만, 과거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비유가, 옮겨 써 보고 싶을 만큼 멋지다. 예를 들면, 진실된 것은 바로 나 자신, 내가 방금 맛본, 남에게 전할 수 없는 순간적인 느낌이다.(126), 옛날이야기처럼, 꿈처럼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150), 순식간에 공기가 다시 굳어버린 듯하다.(1권 82쪽), 공기가 내 발바닥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다. 내 몸과 정신은 자연의 거대한 순환 속으로 몰입했다.(183), 그녀는 유리창에 붙은 색종이처럼 선명했다.(1105), 점점 조여 오는 짙은 어둠(1130), 당신은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어둠이다.(1148)

 

제가 저를 응원해보려고요.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라고 말했을 때, 나의 이 말과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지인이 단지 얘기해 준 것이(읽어보라 하지는 않고) 시작이 되어 읽기 시작했다. 절판되어서 중고 서점에서나 구할 수 있는 책.  나는 집 앞 도서관에도 없어서 다른 동네의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고 있다.

 

제가 저를 응원해보려고요.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라고 그날 그 때 말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여러 모습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영혼의 산'은 읽어보면 좋을 또 하나의 책 목록에 얹어진 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지금 한 장 한 장 그림이 되어 내게 스며들고 있는 중이다.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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