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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다시 보는 날

솔초 2019. 7. 4. 23:51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두 번째 생각이에요.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패스해 주세요.~~"

 

 

20190704
책의 27쪽에 적힌대로 '바틀비는 처음에는 놀라운 분량을 필사했다. 마치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것처럼 문서로 실컷 배를 채우는 듯 했다. 소화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법도 없었다. 낮에는 햇빛아래, 밤에는 촛불을 밝히고 계속 필사했다.'

하지만 이렇게 낮이고 밤이고 계속 필사를 해야했던 바틀비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다른 동료 필경사들과 다른 공간에 두어 동료들로부터 배제되기 쉬운 환경에 배치되었고,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언제든지 상사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경계가 희미한 공간에 배치되었다. 바로 옆 창문 밖은 옆 건물의 벽으로 막혀있고, 약간의 빛만  새어들어왔다.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경, 낮이고 밤이고 필사만 할 수 밖에 없었던...

 

동료들과의 격리, 언제든 수족처럼 부리고 싶어하는 파티션 너머에 있는 상사, 쉼이라고 끼어들 틈 없어보이는 주변환경.파티션도 벽, 창밖도 벽, 언제고 필경사들을 자신의 공간에 들여놓을 수 있게 하는 변호사에게나 유리한 벽(접이식 문)...

밤낮없이 일만 하던 바틀비는 서서히 망가져간다. 이미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해 온 다른 두 필경사들도 오전이냐 오후냐만 다를 뿐 근무중 하루 한 번씩 이상한 증상을 보인다. 이 공간에서 오랫동안 생존하면서 얻게 된 그들만의 아픔이라고 나는 느낀다.

 

필사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변호사가 묻자 바틀비는,

"그 이유를 스스로 보지 못하세요?"
라고 말한다. 

 

삽화를 보면 처음 변호사 사무실에 오던 날과 오른쪽 눈동자가 다르다. 이건 산재인데...
처음 이 책을 읽던 날은 변호사의 시각으로 이 책을 읽으며서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고용주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철탑 위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 이런 생각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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