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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 일흔일곱.m4a
2.24MB

20190619

긴 난봉가를 '다시 해보세요' 할 때는 괜찮은데, 늘 '자, 한 번 해볼까요?' 하고 시작하면 ~~! ~~~!’ 하면서 하나씩 그림을 그리시거든요. 근데 한 번 불러보고 나서 다시 부르면 또 안 그래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안 하려 하나요?”

노래는 내가 불러놓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했는지를 묻고 있다.

 

... 이미 그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는데, 계속 첫날 배운 것을 다시 하려고 하세요. 긴 난봉가를 처음 부르면 첫날 배웠던 상태예요.”

 

떨리는 마음으로 긴 난봉가를 처음 배우던 날을 찾아보았다. 20181219일 쉰아홉 번째 노래 수업의 공개수업에 긴 난봉가 1절이 녹음되어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무려 지난해, 7개월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 걸까?

 

선생님이 짐작하시기를,

아무래도 긴 난봉가의 어려운 부분들이 아직 마음에서 해소가 안 돼서^^”

 

그래도 그렇지. 쓸 데 없이 조심스러운 이 놈의 성미!!! 조금 틀리면 어떻다고 배울 때마다 처음 배우는 날처럼 조심조심 돌다리 두들겨 보듯이 노래를 불렀을까? 혹시나 노래를 빨리, 엄청 잘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봐 두려운 것일까? 마치 나만의 의식을 치르듯 더듬더듬 첫날처럼 불러보고 그다음에 안정감을 찾아서 다시 부른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할 수 있는 걸 일부러 안 하는 듯 한 모양새다.

 

진척할 수 없게 자꾸 (나아짐을) 막아요.”

 

내가 나의 걸림돌이라니, 한 편의 공포영화 같다.

 

이건 노래도 아니에요, 연습 많이 안 하셨나 봐요, 제가 별로 안 무서우신가 봐요? 노래가 별로 안 무서우신가 봐요. ’ 지금까지 선생님한테 들었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충격적인 얘기다. 내가 내 노래를 붙들고 있다는 것은.

 

아직 이 노래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또 맞다. 긴 난봉가뿐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노래들 모두 내가 잘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게 겸손이라면 정말이지 겸손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생님(:) 같은 분들은 칭찬하면 막 화내요.^^”

 

맞다. 그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나는 또 다른 내가 들어 보건대 아직 멀었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노래 수업이 끝난 며칠 후,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2500년 전의 공자가 마치 2019년의 내게 말하듯 제자 염구에게 말하고 있다.

 

염구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가서 그만두게 되는 것인데, 지금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 있구나.”

 

 

윗글에서 인용한 글의 원문. '논어(김형찬 옮김)' 제6편, 옹야 중에서

 

나는 내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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