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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8

"다른 데서는 금방 하더구만..."

문이 열리자마자 성큼성큼 데스크를 향해 걸어오신다. 어제 손자와 함께 온 J의 할머니다.
" ○○○○가 집에 있더라고. 내가 모르고 사갔어. 지금 환불해 줘요."

내가 인사할 틈도 없이 자신의 요점정리를 마치신 어르신은 대기실 의자에 않지도 않고 데스크 바로 앞에 서서 취소해주길 기다린다.

"그럼 원장쌤께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냥 바로 해주면 안 되요? 나 애들 놀이터에 두고 와서 빨리 가야하는데 .."

상황 파악을 하신 원장쌤이 대기실로 나왔다.
"아 그러셨어요? 그럼 집에 있는 거 쓰시고 다음에 사세요~^^ 남경쌤? 지금 바로 환불해 드리세요."

"네!"

대답은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카드 취소를 해본 적이 없다. 결제만 해 봤다. 취소할 상황이 되었을 때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저 데스크에 앉은 지 한 달 밖에 안 됐다구요. 결제는 하지만 취소는 못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J할머니가 놀이터로 빨리 갈 수 있게 지금 취소를 해드려야 한다.ㅜㅜ

외근 나가는 선배쌤에게 취소하는 방법을 미리 물어서 적어 놓은 게 그나마 다행~ 전화해서 묻는 것보단 휴대폰 메모창을 보면서 하는 것이 덜 쪽팔릴 것 같다.

"제가 아직 익숙지 않아서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른 데서는 금방 하더구만, 그것도 못해!"
할머니는 짜증이 나신 것 같다. 아! 진짜 창피해 주겠다. ㅜㅜ
내가 왜 한의원에 들어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카드를 낼 줄만 알던 사람이 카드결제, 현금결제, 무통장입금으로 생기는 미수금 처리, 이제 취소도 할 줄 알아야 한다.

J할머니가 내 손가락 끝 하나하나를 못미더운 눈초리로 지켜보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취소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카드 단말기의 '취소메뉴를 눌러본다. 현금취소, 신용카드 취소 등의 메뉴가 떴다. '신용카드 취소'에 해당하는 번호를 누른다. 카드를 입력하라고 뜬다. J할머니에게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밀어넣는다. 취소금액을 입력라고 뜬다. 어제 결제한 금액을 입력한다. 어제 결제한 내역의 승인번호, 결재날짜까지 입력하고 취소버튼을 누른다.

아직 끝이 아니다. J의 챠트에 있는 진료기록으로 가서 ○○○○앞에 있는 번호를 클릭, 취소, 수정, 수납전송의 순서대로 누른다.

단말기와 챠트, 두 곳에서 취소가 이루어지나보다.

다시 J의 챠트에 들어가면 ○○○○를 제외한 금액이 떠 있다. 여기서부터는 늘상 하는 카드결제의 과정과 똑같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확인을 누른 뒤 카드를 단말기에 밀어넣으면 알아서 영수증이 튀어나오고 결제가 마무리 되었다는 신호인 살구빛 창이 뜬다. 카드를 빼고 확인을 누르면 끝!!!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는지 J할머니가 내게 다가와서 말한다.
"내가 좀 급해서 그랬어요~^"

어려운 수학문제를 혼자 풀어낸 것처럼 성취감이 밀려왔다. 좀전에 창피했던 기억은 벌써 지워졌다.

카드취소를 첨 해봤다고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 '바닥'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므로~

내가 잘하거나 못하는 일들을 꾸미지 않고 적기로 한다.

'한의원에서 일하기'는 내가 쓰는 나의 성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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