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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6
지난 1월 6일 이후로, 나는 책을 한 쪽도 읽지 못했다.
1월 6일은 내가 한의원에서 일한 첫날이다.
원장쌤이 빌려준 <병원관리 실무>에 관한 책이 읽은 것의 전부다.
멍하니 앉아 있거나, 글도 쓰고 싶다. 지난해 7월,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었는데, 지난 1월 6일 이후, 책이 '뚝' 끊겼다.
비비고 소고기무국 대신 아이가 잘 먹는 김치볶음밥이랑 카레를 직접 만들어주고도 싶다. 삼시 세끼 먹여도 잘 먹을 만큼 좋아하는데, 집에 가면 기절하듯 잠만 자느라 반찬도 못 만든다.
세탁기도 돌리고, 안경을 안 써도 너무나 잘 보이는 집 안의 먼지들도 전부 닦아내고 싶다. 퇴근하고 나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진료는 10시부터이지만 나는 9시까지 출근한다. 6시 진료가 끝나도 할 일이 늘 쌓여있다.
3개월 째인 코디네이터 일도 버겁고 서툴기만 한데, 한의원이 이전을 하게 되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계속 불어났다.
이사를 앞두고 나는 거의 쉬지를 못했다. 짐정리를 하느라 거의 모든 날 밤늦게 퇴근을 했다.
한의원 이삿날인 지난 달 31일엔 새벽 3시 반까지 정리했는데도 짐정리가 안 끝났다.
다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든 마음을 억누르고 출근.
익숙하지 않은 공간, 처음보는 환자들, 낯선 직원들과 함께 서툰 나의 코디업무가 시작되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생각할 틈도 없다.
빌려입은 옷처럼 어색한 내 일. 3개월 만에 잘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하는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으면 괴롭다. 숨고 싶다. 잘하는 사람 뒤에 서서 시키는 일만 하고 싶다.
'말도 안 돼!'라고 들리겠지만 이런 내가 지금 실장대행 업무까지 맡고 있다.
내가 알고있는 실장이란 사람은 한의원 살림을 다 맡아하고, 환자와 직원들을 보살피고, 본사에서 요청하는 온갖 보고서를 때에 맞춰 제출하고, 돈관리, 재고관리, 교육이수 등을 하는 사람이다. '대행' 이라는 말이 붙은 것도 전혀 위로가 안 될 만큼, '실장대행'은 내게 버겁다. 코디도 아직 버거운데ㅜㅜ
지금까지 나는 머리에 쥐가 난다는 말은 과장법일 뿐이라고, 진짜 쥐가 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진짜 내 머리에서 쥐가 난다. 다리에서도 쥐가 안 나던 나인데, 뒷머리에서, 앞 이마에서 진짜 쥐가 난다.
오늘은 하지 못한 일들을 덮어둔 채 조퇴를 했다. 쉴 만하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쉬지 않으면 내가 너무 슬플 것 같다. 내 마음과 몸에게 미안할 것 같다.
고작 3개월 일했을 뿐인데, 아주 먼 길을 달려온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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