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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친절도 곤란한 날

솔초 2019. 8. 31. 20:52
20190831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넷을 도서관에  두고는 여자 두 명이 조용히 나갔다. 시간은 오전 11시 15분, 45분 뒤면 점심시간이고 1시까지는 휴관이다. 토요일 오후까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지낼 것을 상상하고 왔을 두 사람에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부모가 모른 채 아이들을 내보내면 언짢아할 수도 있다.

"점심시간이 12시부터라 문을 닫을 거에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아, 예~~ 그렇게 하세요. 근데 예전 사서는 애들 두고 그냥 밥 먹으러 나가던데..."
"예 그랬다고는 저도 들었어요. 근데 저도 제맘대로 근무규정을 어길 수가 없어서요. 점심시간엔 저도 도서관에 못 있어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점심시간을 피해 나갔다 다시 오는 일이 귀찮을 것이다. 대부분은 밥 먹고나서 다시 안 온다. ㅋㅋ 하지만 전임자의 선례 때문에 내가 규칙을 어길 수는 없다.
학교에서도 휴관하고 1시간을 쉬라고 했고, 근로계약서에도 적혀 있다.
그걸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융통성 없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기도 한다. 이럴 때엔 지키려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된다. 열에 여덟은 점심시간을 지키는 데 기꺼이 동참하지만, 전임사서의 친절을 경험한 분들은 못내 아쉬워한다.

만약 내가 믿고 맡긴 아이들이 갑자기 집으로 가버리면? 그틈에 누군가 들어와서 도서관 집기라도 들고 나가버리면?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 문단속은 내 책임이므로, 괜찮아 보이는 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구립도서관처럼 휴관없이 운영되려면 내가 점심을 굶고 쉬지않고 9시간 동안을 근무해야 한다. 아니면 교대할 사람이 있거나.

며칠 전 인공지능 스피커를 수리하러 동네 휴대폰 대리점에 들렀다. 전화로 문의했을 때 와도 괜찮다고 해서 갔더니 매장 구석 테이블에서 씹는 소리도 편히 못내고, 들락거리는 손님들 틈에서, 없는 듯이 도시락을 먹는 직원이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양배추 샐러드를 사각사각 소리도 못내고 잇몸으로 구기듯 힘겹게 넘기고 있었다. 별 내색 안 하고 있지만, 얼마나 불편할까?


이런 상황인 줄을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오면서 그 직원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가 불편함으로 얻어질 때가 많다. 이건 아니야. 같이 조금씩 불편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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