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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친구의 글을 알리는 날

솔초 2020. 1. 10. 23:56

20200110

나는 경전을 읽어본 적이 없다. 성경도 불경도 그 어떤 글도... 성경과 불경 외에 어떤 경전이 더 있는지도 잘 모른다. 나는 경ㆍ알ㆍ못이다.^^
고전을 공부하는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서도, 내가 공부해 볼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재미없을 것이고, 어려울 것이며, 책도 너무 두꺼워서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합리화했다.
지금은 '경전이 갖고 있는 힘이 이런 거라면 나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성장판 고전학교에 가게 된다면, 이 친구가 쓴 아래의 글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친구의 이름은 서민석이다. 내 블로그에 글을 소개하고 자신의 실명을 밝혀도 좋다는 동의를 받고 가져왔다. 귀한 글을 나눠준 친구에게 고맙다.

[ 202001 나도글 - 문성(서민석의 독서모임 닉네임)의 경전독서 체험기 (성장판 고전학교 추천사)]
-글쓴이: 서민석 -

저는 삶에 고민이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혼란스럽고 내면의 힘이 부족하여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북극성이 보이면 그 곳으로 나아갈 텐데,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 늘 갑갑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생에 나침반을 찾을 수 있을까. 방향성이 없다면 삶이든 죽음이든 그게 무슨 소용일까. 숨이 막혔습니다.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컴컴한 미로 속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오랜 시간 혼란을 겪었습니다. 시행착오를 많이 했고요.

그러다가 이십 시절 만난 것이 바로 경전이었습니다. 하나의 경전을 읽을 때는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이 말이 정말 진실일까? 다른 경전에는 다른 진실이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왜 여러 진실이 동시에 있는 걸까? 서로 다른 내용이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 많은 종교 전쟁과 사상 전쟁을 해온 것일까? 의문을 갖고 묵묵히 경전들을 꾸준하게 읽어 나갔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틈이 나는 대로 저는 경전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 하나 읽어나가면서 문득 문득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졌던 물음표가 자연스럽게 느낌표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경전이 아닌, 경전과 경전을 함께 읽고 이해해 나갈 때, 튼튼한 양심이 주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동해안에 손가락을 담가 혀에 찍어 보았을 때와 서해안에 손가락을 담가 혀에 가져다 댔을 때, 맛이 다르지 않구나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나아가 지혜로운 이들이 왜 같은 달을 서로 다른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인이라면 모든 공부의 시작점을 경전으로 삼는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저는 경전을 통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얻었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처음 경전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무엇이 중요한 경전이고 어떤 판본을 선택해야 하는 지 초심자 혼자는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경전 공부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가 많지 않습니다. 또한 경전은 수천년 동안 파묻혀 있던 책이기 때문에 내 삶의 실제 문제와 연결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개는 종교적 신앙의 오솔길로서 개별 경전을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다른 경전을 어떻게 교차하여 이해해야 하는지도 커다란 문제입니다. 경전 하나하나는 두께도 두껍고 재미도 없습니다. 특별한 문제의식이 없으면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경전들을 봐야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저는 성장판 고전학교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학술 전통 안에서 신뢰할 만한 권위있는 판본을 강의자가 채택하여 강의 자료로 제공합니다. 경전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를 지닌 글줄들로, 해석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맥락 (Context) 에 따라 활자 (Text) 의 의미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으며, 전달자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고전학교에서는 학문적인 검토를 충분히 거친 권위있는 관점들을 채택하고,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밝혀가며 강의를 진행합니다. 사실, 종교 경전에 대한 여러 해설서들은 정치 분야와 비슷하게도 제각기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고전학교에서는 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배제하여 그것의 핵심이 되는 지혜와 사람이 배워야 할 가치에 초점을 맞춥니다.

둘째로,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양한 종교 경전들을 서로 마주 대어 보고 함께 맛볼 수 있습니다. 고전학교에서는 특정 종교의 세계관 만을 옳은 것으로 채택하고 다른 종교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점에서 댜앙한 경전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배워 나갑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밝은 내면과 보편적인 양심의 가치가 각 문명의 환경과 시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른 빛깔과 이야기로 각색되어 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논어, 도덕경, 성경, 금강경, 우파니샤드 등 이런 책들은 대학교에서 누구나 배워야 할 고전으로 꼽는 책이기도 합니다. 현대인이라면 문명의 가장 바탕이 되는 경전들을 읽음으로써 문화적 소양과 지식의 밑받침을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말 번역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전들은 오래 전에 한자어, 히브리어, 라틴어,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등 현대에 익숙하지 않은 문자들로 쓰여졌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장과 절이 상황에 따라 편집되어 왔고, 또 다른 언어로 이중, 삼중의 번역 과정을 거친 끝에 오늘 날 한국어 판본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가장 순수한 원천 언어가 무엇이고, 현재 한국어로 번역된 도착 언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경전 언어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구조와 낱말들을 다시 골라내는 것이 중요한데, 강의자는 이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원천 언어를 함께 보여주고, 좋은 우리말 번역을 짓고자 노력합니다. 우리말로 지은 경전 공부를 통해 이는 우리의 삶과 늘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넷째로, 근대로 연결되는 다리를 놓아줍니다. 전근대의 경전들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양심의 윤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가치관은 답답합니다. 올바른 규율들은 나만의 솔직한 오답들을 옭아매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반대합니다. 인류역사적으로 근대는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싹트고 개발된 것입니다. 경전 공부를 가르치는 많은 모임들은 때때로 경전의 전근대 규율에 갇혀 버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성장판 고전학교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시민학교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근대 경전들을 건강하게 넘어 근대의 고전들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다른 경전 공부 모임과 두드러지게 다른 소중한 특징입니다. 이러한 공부 방식은 마치 계단 하나를 밟고 올라서야 다른 계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것들이 제가 느낀 성장판 고전학교의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제가 20대 시절 고전을 힘들게 공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제가 느끼는 고전학교의 가치는 정말 커다란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전학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전근대 경전은 정답 모음집이다, 한번 먹어두면 영원히 배부르다!"
"근대 고전은 오답 모음집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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