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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어제저녁, 그리고 몇 개나 쓰는지 헤아려보지 않고 쓰게 되는 물컵, 커피잔, 냉장고 안에 있는 묵은 반찬들을 정리하고 생긴 유리그릇들, 더 이상 먹지 않을 것 같은 김치찌개의 잔여물을 비운 찌개 냄비......
빨리 해도 20분은 걸릴 것 같은 설거지 더미를 바라보다가 아이에게 말했다.
“(다른 집안일은 내가 할 테니) 설거지만 네가 좀 해 줄래? 아니다, 반만. 다 하지는 말고...”
“아니야. 음악 들으면서 하면 금방 할 수 있어.”
아침저녁으로 듣는 데파페페의 ‘One'을 틀어 놓더니 그 많은 설거지를 순식간에 해치운다. '데파페페의 효과'가 집안일에까지 미치는구나.^^
“내가 정리해 둔 것 한 번 봐봐!”
고무장갑도 내가 두던 곳에 가지런히, 유리그릇들은 뚜껑이랑 본체를 맞추어 뚜껑까지 닫은 뒤 탑처럼 쌓아놓았다. (물기를 말린 뒤에 뚜껑을 닫는 게 좋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27분 걸렸어.”
나는 27분 동안 친구랑 카톡도 하고, 아이의 뒷모습 사진도 찍고, 아이의 뒷모습이랑 나의 뒷모습이 닮았는지 관찰하기도 하면서 푹 쉬었다.
지금까지도 곶감 만들 때엔 감 껍질도 깎고, 장 담글 땐 항아리에 소금물도 붓고, 매실액 만들 땐 매실 씨도 발라내고, 팥죽 쑬 땐 새알심도 만드는 등 집안일에 많이 참여해 왔지만, 이전에 비해 레벨이 올라간 느낌이다.
단지 일만 해 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음악 들으면서 하면 안 힘드니 힘들까 봐 걱정하지는 말라.’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얼마나 깔끔하게 일처리를 했는지 뒷정리해놓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PR의 기회도 놓치지 않는다. 여기까지도. 훌륭한데 ‘혼자 해보니 힘이 많이 든다.’고 말하면서 엄마의 힘들었음에 공감하는 말로 일을 한 것보다 더 큰 위안을 내게 준다. 그리고 제 방으로 돌아가면서 슬쩍 흘리는 한 마디~
“혼자 다 해보니까 힘이 많이 드네.^^”
흐름만으로 보면 프레젠테이션이나 프러포즈였대도 좋았을 구성이다. 설거지 한 번 한 것을 두고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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