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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보물섬에 가지 못한 날

솔초 2019. 10. 6. 23:14

20191006

지난 10월 1일 일기에도 쓴 것처럼 내 엄마의 일기에 관한 이야기가 월간지 H 10월호에 실리게 된다.

필자이자 나의 지인인 L님은 엄마에게 3가지 숙제(?)를 내주었는데, 오늘 엄마는 2가지 숙제를 끝냈다.

엄마가 70년 전에 보았던 종달새와 아중 호수에서 본 왜가리 가족을 그린 그림이 그것이다. 엄마가 그린 그림들은 엄마 집 가까이에 사는 형부를 통해 휴대폰으로 내게 전달되었다. 3월부터 엄마의 일기를 받아 적고, 책으로 묶으면서 이 두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70년 전 엄마가 어려서 본 종달새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무려 6마리. 6마리가 순서대로 줄지어 날고 있다. 심지어 보라색.(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보라색을 가장 좋아한다.^^) 상상 속의 새들은 높게 날지 않았다. 배경으로 서 있는 12그루의 나무들보다 낮게 날고 있다. 새들 바로 아래는 꽃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하다. 위험하지 않게 낮게 날게 한 걸까? 종달새가 이렇게 저공비행을 하는 새인지는 잘 모른다. 엄마 상상 속의 하늘처럼 그림 속 하늘도 파랗다.

‘너무 좋아서 잊혀지질 않는단다’라고 일기에 썼던 그 날의 풍경이 70년 만에 그림으로 그려졌다. 이 한 장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어렵게 끄집어낸 기억을 바라보면서 가슴 벅찼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또 한 장의 그림은 아중 호수의 왜가리 그림이다.

호수 옆 풀밭에 외가리 4마리가 놀고 있다. 외가리 4마리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맨 뒤에 있는 왜가리가 제일 작아 보이는데, 막내 왜가리다. 호수 위로 날고 있는 왜가리는 얼핏 하늘을 나는 왜가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가족인지 다른 집 왜가리인지 모르지만 이 왜가리도 평화로워 보인다. 이 곳에 올 때마다 엄마는 평화로워했다.

가족이 다 같이 있는 모습. 이 평범한 풍경이 엄마는 부러웠던 걸까? 평범한 줄 알았던 지난날이 그리웠을까? 그래서 갈 때마다 왜가리 가족을 찾고, 보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숙제는 엄마만의 보물섬에 같이 가고 싶은 가족사진 찍기이다. 국내도 아니고 멀리 미국까지 떨어져 사는 가족을 불러 모아 가족사진을 찍을 수는 없어서, 최근에 엄마 생일날 찍은 사진 중 한 장을 골라 쓰기로 엄마와 얘기를 했다.

하지만, 이 가족 사진에 찍힌 12명의 가족들이 잡지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으므로, 가족밴드에 올려 의견을 물었다.

엄마의 일기와 그림만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사진은 쓰지 말자) 사진이 잘 나온 게 아니라 걸린다. 관심 있게 안 본다. 봐도 모른다. 나는 싫다. 나는 상관 없다. 혹은 크게 상관없다......

반대인지 괜찮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의견을 반대로 보았을 때, 4명은 반대, 8명은 찬성 혹은 무관인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4명이든 1명이든 반대가 있으면 사진을 실을 수 없다. 필자는 엄마랑 내가 의논해서 결정하라고 하긴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가족 ‘사진’을 쓸 생각으로 이 숙제를 엄마에게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사진을 실을 것인지, 혹은 싣는 자체를 반대하는지 어떠한지 등을 지켜보면서 엄마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한 가족들의 마음들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족사진보단 엄마만의 보물섬에 같이 가고 싶은 가족을 그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엄마의 일에 가족들이 관심을 갖고, 의견을 모으고, 찬성과 반대로 갈리기도 하고.... 이런 일은 엄마로만 사셨을 때엔 없었던 일이다. 엄마가 화제의 중심에 섰던 일이 아프시거나 입원했을 때 외에 또 있었던가?

엄마 개인으로 조명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일기를 쓰다 보니 왠지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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