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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니들이 내 말을 따라야 집안이 화목한 법이여.  작은 아버지들 오시면 있는 술도 드리고 있는 밥에 국도 그냥 챙겨드리고 그러는 거지...."
명절에 느닷없이 무단결석을 한 나, 셋째 머느리에게 긴 말씀 없이 침묵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전화를 드렸다가 어머니의 이런 말씀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있는 술이랑 있는 밥'을 챙겨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작은 아버님들과 그 가족들을 대접하기 위해 정작 '가족'끼리는 편히 얘기도 못하고 종일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려아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결흔 두달 째인 99년 설부터 20년째 며느리들의 안식년을 제안했고,  아들, 며느리, 손자가 다같이 함께 행복한 명절을 제안 했으며, 부엌에서 부엌으로 끝나는 명절은 며느리들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킬 뿐이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에게, 같은 동서에게, 아주버님과 시부모님께 얘기해 왔다.

"어머니 말씀을 따라야 집안이 화목하다는 건 어머니 혼자만의 생각이실 수 있어요."
어쩌자고 흥분하지도 않고 너무도 고분고분한 말투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큰며느리 중요한 자리이고, 가장 의지하시는 며느리잖아요. (큰형님 )지금까지 30년 달려왔고 또 30년 달릴 건데, 딱 한번 휴가, 어려우세요?
멋진 시어머니 되실 최고의 기회니까 어머니가 이번 설 때 휴가 한번 주세요. 휴가 가기 싫은 게 아니라 못가는 거에요. 큰 아주버님이 보내주고 싶어도 어머니 눈치보느라 못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먼저 보내주셔야지요."

" 그런 건 훗날 얼굴 보고 얘기하자."
확답이 두려우신 거다.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하기에도  뭔가 명분이 부족하신 거다.
큰형님의 설휴가를 지금 얘기하는 이유는 미리 생각해 볼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다.
이렇게 6개월 전에 얘기를 해도 나중에 다음에 하시면서 미루고싶어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제가 작은 형님이랑 둘이 할게요."
"장은 너희 큰 형(님)이 봐야 한다."
최소 20년차인 나와 작은 형님을 명절 장보기도  맡기기 못 미더운 사람 취급하심으로써, 큰형님 휴가에 대한 어머니의 반대입장을 드러내셨다.
"그럼 큰형님한테 목록을 받아서 제가 보면 되지요?"
" 그럼 너희 큰형(님)하고 똑같이 해야 한다?"
"똑같인 못해요. 제 능력만큼 할거에요."

나는 어머니를 이겨먹을 작정으로 이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 이라는 이름으로 며느리들을 '딸처럼 여기신다는 어머니께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지쳐있는 가족의 구성원,  며느리들. 일단 큰 며느리부터 안식일을 갖게 하자고 제안한 것 뿐이다.

가족도 아닌 군대에도 휴가가 있고, 역시 남들의 조합인 직장에도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가 있다.

가족이고 딸같은 며느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들어주지도 않는다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고분고분하게 말씀드려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냈다.
나의 큰형님에게 몸이 안좋으신 친정 엄마와의 호캉스 1박을 선물해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내 호캉스 성과 중의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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