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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알 것 같은 날

솔초 2019. 8. 21. 23:09

20190821

 

엄마의 일기를 다시 천천히 읽어 보았다.

편집자가 아니라, 딸이 아니라, 독자가 되어서...

 

그리고 알게 된 것들이다.

1.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신다.

“70년 전 일을 상상하면서 그렸는데, 아주 엉망이 되어서 내일 다시 시도를 해봐야겠다. 아니 종달새를 못 그리겠어. 보리밭 하고 하늘은 그리겄는디 종달새를 못 허겠어.”(20190407 일기 중)

내일은 핸든폰을 가지고 가서 외가리 사진 찍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20190608 일기 중)

나무들이 꽃송이처럼 봉올봉올. 내일 다시 똑똑이 보고 그림을 남겨야지.“(20190506 일기 중)

내가 화가였으면 좋은 작품 나올 뻔도 한데 아십다. 착각 속에서 살지.”(20190501 일기 중)

 

: 가정방문 미술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하나 고민이 된다. 물론 됐다고, 손사래를 치실 거라고 예상은 한다. 하지만 엄마가 화가가 되지 않더라도-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70년 전에 본 종달새를 그릴 수 있을 정도의 그림 실력을 갖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2. 자연에 대한 관심 혹은 호기심이 생겼다.

“천쩨, 운동을 못가니가 기븐이 별로다. 열흘 후에는 갈 수 있을까 고민이다. 아중 호수가 눈에 선하다. 잔잔한 물결, 산천초목, 날아다니은 외가리... 며칠만 참자.”(20190627 일기 중)

 

“호수 얕은 쪽에 왜가리 한 마리 놀고 있다. 한번 만져보고 싶다.”(20190617 일기 중에서)

 

 

3. 좀 더 지켜보니 외가리의 상황과 엄마의 심경을 동일시하는 듯하다.

항상 두세 마리가 있었는데, 오늘은 한 마리만 있다. 외롭게 보인다.” (20190607 일기 중)

 

잔잔한 물결에 산은 녹음이 무성하고, 외가리는 날아다니고, 마음이 풍성하고, 마음이 즐거움을 느낀다.”(20190605 일기중)

 

“외가리 세끼 두 마리가 놀고 있다. 오늘은 큰 젯빛외가리와 같이 있다. 아마 아빠 외가리 것 갔다.”(20190604 일기 중)

 

 

4. 약자에 대한 애정, 배려가 있다.

“물소게 활같이 굽은 나무 한 구루라 있다. 나무 잎도 예쁘게 나왔는데, 너무 안쓰럽다. 활기 있게 자라라고 이름 활나무라 지어주었다.” (20190419 일기중)

 

곰들도 물속도 안이고 세면 바닥 더위에 말 안 되게 보인다.”(20190601 일기중)

 

나는 누구의 엄마, , 아내, 며느리가 아닌 나로 살겠다는 생각이라도 하지만, 엄마는 누구의 엄마나 아내, 할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으셨다.

 

딸이자 친구인 내가 엄마의 그런 삶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독자가 되어 엄마의 일기를 읽고 나서야 들었다.

 

 

*엄마의 일기 인용 부분의 한글 맞춤법은 '티스토리의 맞춤법 검사'가 아닌 엄마가 알고 계신 문법에 따른 것입니다.

 

똑똑히 보고 그림을 남기고 싶다고 한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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