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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시녀이야기'에서 '시녀'의 붉은 색깔 옷은
1 출산, 생리혈을 상징 : 아기 낳을 여자, 애트우드 표현대로 '다리 달린 자궁'
2 ('아내'의 입장에서 '시녀'란) 격리, 배제하고 싶은 대상
3  '눈'이나 '아주머니'(감시자)의 눈에 잘 띄어서 규칙을 위반했을 때 골라내기 쉬운 색. 관리, 통제해야 하는 대상.
4 낳지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주어진 3번의 임신 기회를 못살리거나 건강한 아이를 못낳거나) 살고 죽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음. 즉, 누군가의 소유물임.
5 살고자 하는 죽음(죽더라도 내가 원하는 걸 하겠다는)
등을 담고 있다고, 읽으면서 생각했어.


길리아드 사회에서 '시녀'는 '다리 달린 자궁'으로써, 정해진 남자와 정해진 날에 필요한 동작만으로 '의례'(임신을 위한 작업. 섹스가 아님)를 치르게 되는데, 아기를 낳지 못하는 남자의 '아내'도 의례에 같이 참석해. 하녀가 속옷을 벗고 남자가 지퍼를 내리는 걸 제외하면 셋다 옷도 그대로 입고 몸이 3단으로 조금씩 포개져서 '의례'를 치러.
('의례'에 대한 묘사는141~143쪽)

시녀는 죽을 권리도 없어. 아이를 못 낳거나 탈출 등의 다른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지도 못하지. 시녀의 방 안엔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어떤 물건도 두지 않거든.  
화장실 이용시간에도 제한이 있고, 다른 남자를 쳐다보는 것도 금지. 정해진 사람과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곳을 다녀야 해. 가둬놓지만 않을 뿐, 열린 감옥이나 다름 없어 보여.

시녀들의 이름은 오브프레드, 오브글렌, 이름에 소유격 of가 들어있어.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물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작가의 이런 이름짓기에서 완전 반했어.
하지만 여주인공 오브프레드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람이고 여자인 걸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지.
정확하게 옮기긴 힘든데, 오브프레드가 '유사시에 쓰려면 맑은 정신을 저축해 두어야 한다'고 하던 문장이 기억난다.

오브프레드는 자기가 원하는 남자랑 섹스를 하기 위해 모험을 해. 길리아드 사회에선 금지된 일이라 걸리면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래도 해. 자기 방에서 부엌을 가로 질러 부엌 뒷문으로 나가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동안 총알이 자신의 몸통을 뚫고 지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남자에게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아.

'정해준' 남자와의 '의례'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남자와의 '섹스'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다니. 사령관(남자)은 아내와 시녀 둘 다를 공식적으로 둘 수 있는데, 시녀(여자)가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려면 총알에 몸통이 뚫릴 각오까지 해야 하는 거지. 알고보면 일부다처제(아내,시녀. 아기를 못 낳으면 새 시녀로 교체 가능)인 일부일처제 안에서 여자의 삶에 얼마나 많은 난관과 제약이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이 장면(395쪽)에서는 4번과는 또 다른 죽음이 느껴지네. 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내가 오브프레드였다면 어땠을까? 정신줄을 놓고 충실한 시녀로 살거나 맑은 정신으로 매 순간 죽기를 각오하고 살거 나... 쉽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아. 

아까 내가 있는 한 톡방에서 S가 자신의 프로필 사진들을 올렸었어. 사진의 바탕색깔이l 여러가지였는데, 어떤 색이 좋을지를 여러 친구들에게 물어보았거든. 각자의 생각대로 S에게 어울리는 색깔들을 추천했지.

나는 S와 '닮은' 색을 바탕색깔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가 '시녀이야기'의 붉은 옷들이 생각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S에게 어울리는 색깔은 어떤 것일까? S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색깔로 표현하면 어떤 색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어.

단순히 S를 '닮은 색이 아니라 S의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

옷 색깔 한 가지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네. 고마운 책이야,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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