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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F'때문인 날

솔초 2019. 11. 10. 23:59

20191110

간식을 사러 매점을 가니 팝콘 외엔 엄마가 드실 만한 게 없다. 나초처럼 바삭(엄마에겐 딱딱)거리거나, 버터구이 오징어처럼 쫄깃(엄마에겐 질겅) 거리거나, 핫도그나 피자처럼 쫀득거리거나.... 같이 먹으려니 살 게 없다.
엄마를 위해 과육이 씹히는 쥬스 한 병만 산다. 극장 매점의 메뉴는 자주 찾는 연령층의 취향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외부음식 반입금지'라고 쓸 거면 외부 음식을 가져올 생각이 안 들게끔 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도 고를 수 있는 메뉴가 한두 가지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음 시간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들어오시는 어르신들 일행을 여럿 만났다.
그 중 한 분은 자리를 못 찾겠다면서 내게 티켓을 보여주셨다.
"안내원한테 물어보라는데, 여기 와보니 아무도 없어."
친절하게도 티켓에는 'F5,6 좌석을 안내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긴 했지만, 안내원은 내가 들어갈 때도 이미 없었다. 달랑 한 글자, 'F' 때문에 자리를 찾지 못한 어르신들을 내가 자리까지 안내해 드렸다. 같은 돈 내고 들어와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영어와 숫자로 좌석표시가 되어 있는 것에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극장에 오기 힘든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 어르신들 일행이 아니었다면 나도 당연한 듯 편안하게 내게 익숙한 이 시스템을 즐겼을 것 같다.

<F5,6>이나 <바 5,6>이 아닌 <딸기 5,6>,<사과 5,6>, <수박 5,6> 등 과일 그림(글씨 말고)을 넣으면 어떨까 생각을 해 본다. 좌석 표시가 꼭 글자일 필요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이 분들이 내가 못 배워서 라고 자신을 탓할까 봐, 나는 염려스럽다.

그 어르신들의 티켓에는 'F5,6 좌석을 안내해 주세요'라는 문장이 빨간 펜으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사진은 엄마와 나의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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